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3국 동맹 전쟁 (문단 편집) === 브라질 제국 === 승자인 3국 동맹도 인적 피해는 적지 않았다.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한 브라질은 20만명에 달하는 대군을 파병해 그 중 5만 명이 사망했다.아르헨티나도 2만명이 넘는 전사자를 냈고 3국 동맹에서 가장 덩치가 작은 우루과이도 전사자 5,583명을 냈는데 당시 우루과이 인구가 40만명 미만이니 피해가 작지 않았다. 그래도 이들은 승자로서 파라과이로부터 땅을 얻어내고 보상금 명목으로 파라과이로부터 이거저거 개발권이나 여러 모로 뜯어갔다. 승리의 주역이었던 브라질 제국 황실은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종전선언을 했고 궁전에서는 피아노 18대와 650명의 악기연주자를 동원한 초호화 승전 기념 파티를 열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브라질도 이 전쟁으로 한 가지 문제를 안게 되었으니 바로 군부의 부상이다. 전쟁 직전 1,500명에 불과하던 브라질 제국군 장교가 전쟁이 끝날 때 1만명을 넘겼고, 전쟁 기간 숱한 전투 무용담과 전쟁 영웅들이 탄생했으며 이들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어 하나의 정치 세력이 되고 말았다.[* 1872년 이들을 중심으로 한 공화당이 창당했다.] 이후 군부는 "파라과이와 로페스 대통령을 지나치게 몰아붙였다"는 식의 비판을 [[페드루 2세(브라질)|페드루 2세]] 황제에게[* 로페스가 빡친 3국 동맹의 비밀 협상 내용 상당수가 황제의 의도가 들어가 있었다. 황제는 로페스가 자기 명예를 건드렸다고 생각해서 심기가 너무 불편해 로페스를 죽여 버리고 싶어했다.] 대놓고 해낼 정도가 되었고. 때마침 전쟁에 참여하고 출세한 참전용사 출신 흑인들이 주도한 1888년 노예 해방[* 노예 폐지론자였던 황위 계승자 이사베우 공주가 주도했지만 황제 본인 역시 노예제 폐지에 관심이 많았다.]을 계기로 제정에 반감을 가진 대지주들 및 공화주의자들과 손잡은 군부는 1889년 쿠데타로 [[페드루 2세(브라질)|페드루 2세]]를 축출하고 [[브라질 제1공화국|브라질 연방 공화국]]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브라질 군부는 쿠데타와 막후 정치 조정 등으로 브라질 정치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국가 안의 또다른 국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거기다가 나름대로 안정적이었던 브라질 제국이 공화정으로 탈바꿈한 후 나라가 엉망이 되었으니 오죽하면 제정이 더 나았다는 말이 나올 만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